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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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 유니콘스는 1995년 현대전자가 인수하여 창단한 KBO 리그 야구팀이다. 1996년 김재박 감독 부임 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1998년에는 첫 우승을 달성했다. 2000년과 2003년, 2004년에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2000년대 초반 강팀으로 자리 잡았으나, 모기업의 재정난과 연고지 문제, 선수 유출 등으로 인해 2008년 해체되었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현대 유니콘스로 이어지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김재박, 김시진 등이 감독을 역임했고, 박재홍, 정민태, 박경완 등 많은 스타 선수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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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유니콘스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팀명 | 현대 유니콘스 |
| 원래 이름 | 현대 유니콘스 |
| 로마자 표기 | Hyeondae Yunikongseu |
| 한국어 표기 | 현대 유니콘스 |
| 한자 표기 | 現代 유니콘스 |
| 일본어 가타카나 표기 | 히ョン데=유니콘스 |
| 영어 표기 | Hyundai Unicorns |
| 창단 | 1982년 |
| 해체 | 2008년 1월 |
| 연고지 | 인천광역시 (1982년–1999년) 수원시 (2000년–2007년) |
| 구장 | 숭의야구장 (1982년–1999년) 수원야구장 (1989년–2007년) |
| 이전 구장 | 숭의야구장 (1982년–1999년) |
| 수용 인원 | 12,000명 (숭의) 20,000명 (수원) |
| 이전 팀명 | 삼미 슈퍼스타즈 (1982년–1985년 전기) 청보 핀토스 (1985년 후기–1987년) 태평양 돌핀스 (1988년–1995년) |
| 마스코트 | 유니, 코니 |
![]() | |
| 구단 정보 | |
| 소속 리그 | KBO 리그 (1982년–2007년) |
| 가맹 단체 | 한국야구위원회 |
| 구단주 | 정몽헌 (1996년 ~ 2003년) |
| 스폰서 | 현대전자 (1996년 ~ 2000년), 현대그룹 (2001년 ~ 2007년) |
| 감독 (해체 당시) | 김시진 |
| 영구 결번 | 없음 |
| 성적 | |
| 리그 우승 횟수 | 3회 |
| 리그 우승 | 1998년, 2000년 (드림), 2003년, 2004년 |
| 한국시리즈 우승 횟수 | 4회 |
| 한국시리즈 우승 |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
| 한국시리즈 진출 횟수 | 6회 |
| 한국시리즈 진출 | 1994년, 1996년,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
| 플레이오프 진출 횟수 | 6회 |
| 플레이오프 진출 | 1989년, 1994년, 1996년, 2000년, 2001년, 2006년 |
| 준플레이오프 진출 횟수 | 3회 |
| 준플레이오프 진출 | 1989년, 1996년, 2002년 |
| A클래스 | 11회 (1983년, 1989년, 1994년, 1996년, 1998년, 2000년-2004년, 2006년) |
| B클래스 | 15회 (1982년, 1984년-1988년, 1990년-1993년, 1995년, 1997년, 1999년, 2005년, 2007년) |
2. 역사
1995년 시즌 이후, 현대전자(현대그룹 계열사)는 재정난에 빠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했다.[4] 대한야구협회 아마추어 리그의 현대 피닉스와 사업 관계 때문에 피닉스 선수단 5명이 유니콘스로 이동했다.
1996년 김재박 감독을 영입하고, 선수 보강을 통해 창단 첫 해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해태 타이거즈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4] 박재홍은 신인왕을 수상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1998년은 김재박 감독의 지휘 아래 KBO 리그 1위를 차지했고,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를 4승 2패로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며 유니콘스에게 잊을 수 없는 해가 되었다. 정민태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KBO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3번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1999년에도 정민태는 리그 승리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활약했다.
2000년 현대는 연고지를 인천에서 수원으로 이전하고,[4][5] 그 해 두산 베어스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포수 박경완은 40홈런을 기록하며 KBO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고, 톰 퀸란은 2000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2003년과 2004년에도 현대는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우승했다. 특히, 2003년 심정수는 53홈런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 시기 현대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모기업 현대전자의 경영난으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5]
2005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겪게 된다. 2004년 시즌 후, 주축 선수였던 박진만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고, 심정수는 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나면서 전력에 큰 손실을 입었다.
모기업 현대전자의 법정 관리와 적은 관중 수는 재정난을 심화시켰다.[5] 이로 인해 유니콘스는 다른 현대 계열사의 지원에 의존해야 했으며,[5] 2006년 시즌 후에는 농협에 매각될 뻔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5] 결국 현대 유니콘스는 2008년 1월 해체되었다. 이후 시애틀에 본사를 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선수와 직원을 인수하여 히어로즈 야구단을 창단하고,[6]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했다.
2. 1. 창단 이전
1982년 한국 프로 야구 출범과 함께 삼미 슈퍼스타즈가 창단되었고, 이후 1985년 청보 핀토스, 1988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어졌다. 1995년 9월 21일 현대그룹이 야구단을 인수하기 전까지 이들 구단은 팀 전력과 모기업의 지원이 모두 부족하여 14년 동안 한국시리즈 우승 없이, 준우승 1번, 플레이오프 진출 2번, 최하위 6번을 기록했다.[16][17]1983년 삼미 슈퍼스타즈는 장명부의 활약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장명부는 30승[1] 16패 6세이브를 기록했다. 1985년 슈퍼스타즈는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 리그 최다인 18연패를 기록했고,[2] 그해 6월 29일 청보에 매각되어 팀명이 청보 핀토스로 변경되었다.[3] 1988년에는 태평양 화학(현재 아모레퍼시픽)에 매각되어 태평양 돌핀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2. 1. 1. 삼미 슈퍼스타즈
1982년 KBO 리그 원년 멤버로 창단된 삼미 슈퍼스타즈는 인천을 연고지로 하였다. 모기업은 삼미그룹이었으며, 팀 전력과 모기업의 지원이 모두 약했다.[16][17]첫 해인 1982년에는 전기리그 10승 30패(승률 0.250), 후기리그 5승 35패(승률 0.125)로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했다. 1983년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전력 평준화 정책에 따라 재일 한국인 선수 영입이 허용되면서 후쿠시 히로아키(장명부)와 키야마 히데모토(이영구)를 영입, 전기와 후기 모두 2위를 차지하며 상위권 경쟁에 합류했다. 특히 장명부는 30승(리그 최다승)[1] 1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4를 기록하며 1983년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984년부터 다시 부진에 빠졌고, 1985년 모기업 삼미그룹의 경영 악화로 슈퍼스타즈는 청보식품에 인수되어 후기리그부터 청보 핀토스로 팀명이 변경되었다.
2. 1. 2. 청보 핀토스
1985년 후기리그부터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하여 청보 핀토스가 창단되었다.[3] 청보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부진을 극복하고자 했으나, 모기업의 지원 부족과 선수층의 한계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987년까지 운영된 후 태평양 돌핀스로 매각되었다.2. 1. 3. 태평양 돌핀스
1988년 태평양 화학(현재 아모레퍼시픽)이 청보 핀토스를 인수하여 태평양 돌핀스로 팀명이 변경되었다.[16][17] 태평양 돌핀스는 모기업의 지원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1989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해태 타이거즈에게 패했다.1993년에는 15연패를 기록하는 등 부진하여 34승 82패 10무, 승률 .310으로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1994년에는 KBO에서 2위를 차지하며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LG 트윈스에게 4전 전패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5년 시즌이 끝날 무렵, 태평양 그룹은 4700억원(당시 환율로 약 65억 엔)에 현대 그룹에 구단을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
2. 2. 1996년~1999년
현대 유니콘스는 1996년 창단 첫 해에 정규 시즌 4위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이후 전력 보강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1997년 시즌 전에는 전준호와 문동환을 포함한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전준호는 트레이드 충격으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1997년에는 에이스 정민태와 불펜 투수 조웅천 등이 활약했으나, 위재영의 부상, 정명원의 부진, 타선 침체 등으로 투타 밸런스가 무너졌다. 박재홍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3할 타율과 20-20클럽을 달성했지만, 김경기와 박진만은 부진했다. 결국 선수층의 빈약함을 드러내며 정규 시즌 6위에 머물렀다.
1998년은 김재박 감독의 지휘 아래 KBO 리그 1위를 차지했고,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를 4승 2패로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하며 유니콘스에게 잊을 수 없는 해가 되었다. 정민태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KBO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3번의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1999년에도 정민태는 리그 승리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활약했다.
2. 2. 1. 현대 피닉스와 태평양 돌핀스 매각
현대그룹은 프로 야구 진출을 위해 아마추어 야구단 현대 피닉스를 운영했다. 1994년과 1995년 시즌 오프에 프로 지명을 받은 대졸 선수들을 높은 계약금으로 영입하며 기존 프로 구단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신생 리그 창설이 어려워지자, 현대는 기존 구단 인수로 방향을 전환했다. 1995년 시즌이 끝날 무렵, 태평양 그룹으로부터 약 4700억원에 구단을 인수하는 데 합의했고, 팬 공모를 통해 구단명을 '현대 유니콘스'로 결정했다.현대 그룹은 프로 야구 참가에 성공한 후, 현대 피닉스 선수들을 활용하여 입단 계약을 해제하고 원래 지명했던 구단으로 입단시키는 대신, 해당 구단의 주력 선수들을 무상 트레이드 형태로 받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현대 피닉스가 아마추어 팀이라 선수 보유권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2. 2. 2. 1996년
1995년 시즌 이후, 현대전자(현대그룹 계열사)가 재정난에 빠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했다.[4] 대한야구협회 아마추어 리그의 현대 피닉스와 사업 관계 때문에 피닉스 선수단 5명이 유니콘스로 이동했다.1996년, 김재박 감독을 영입하고, 계약으로 묶여 있던 태평양 선수들의 계약을 해지하는 대신 주력급 선수들을 무상 트레이드로 받는 방식으로 전력을 보강했다. 그 결과, 창단 첫 해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해태 타이거즈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4] 박재홍은 신인왕을 수상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2. 2. 3. 1997년
1996년 현대 유니콘스는 구단 인수 후, 당시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던 현대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강팀으로 변모했다. 우선 현대는 1996년에 계약으로 묶여 있던 태평양 소속 선수들의 계약을 해지하고 원 소속 구단과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해당 구단으로부터 주력급 선수를 무상 트레이드로 받는 방식으로 전력 보강에 나섰다. 1998년부터는 "약소 구단 죽이기"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당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쌍방울 레이더스로부터 주력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하기도 했다.[4]2. 2. 4. 1998년
김재박 감독 부임 이후, 현대 유니콘스는 짜임새 있는 팀워크와 강력한 투수진을 바탕으로 1998년 KBO에서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정민태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KBO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는 4승 2패로 승리하며, 마침내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4]현대 유니콘스는 1996년 구단 인수 후, 당시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던 현대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강팀으로 변모했다. 1998년에는 "약소 구단 죽이기"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쌍방울 레이더스로부터 주력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등, 적극적인 전력 보강을 통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 2. 5. 1999년
1999년, 정민태는 20승을 넘어서며 리그 승리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양대 리그 체제로 인해 투타 불균형으로 팀은 고전했다.[4]2. 3. 2000년~2004년
2000년 현대는 연고지를 인천에서 수원으로 이전하고,[4][5] 그 해 두산 베어스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포수 박경완은 40홈런을 기록하며 KBO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고, 톰 퀸란은 2000년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2003년과 2004년에도 현대는 한국시리즈에서 각각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우승했다. 특히, 2003년 심정수는 53홈런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 시기 현대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모기업 현대전자의 경영난으로 인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5]
2. 3. 1. 2000년
현대는 2000년 시즌을 앞두고 연고지를 이전하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기존 연고지였던 인천, 경기도, 강원도 지역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려 한 것이다. 이는 당시 8번째 구단이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부도와 관련이 깊다. 프로야구가 홀수 팀으로 운영될 것을 우려한 KBO는 새로운 구단을 찾던 중 SK그룹과 접촉했고, SK그룹은 팀 창단 조건으로 서울 연고권을 요구했다. KBO가 난색을 표하자 SK그룹은 차선책으로 당시 현대 유니콘스가 사용하던 인천을 요구했다. KBO는 현대 유니콘스에게 서울 연고권을 줄 테니 우선 수원으로 이전해달라고 요청했고, 현대는 이를 받아들여 연고지를 수원으로 옮기게 되었다.[4][5]현대는 최원호와 심재학을 맞트레이드하여 심재학을 타자로 전향시켜 야수진을 강화했다. 이 해는 최초로 홀드 제도가 시행된 해로, 조웅천이 초대 홀드왕에 올랐다. 정명원은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중고 신인 위재영은 39세이브를 기록했다. 선발진에서는 김수경, 정민태, 임선동이 18승 트리오를 결성하며 막강한 위력을 보였다.
박경완은 4연타석 홈런과 40홈런을 기록하며 거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고, 박재홍은 통산 3번째 30-30클럽에 가입하며 호타준족의 면모를 보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록 밀어주기'라는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다. 김재박 감독이 이끄는 현대는 91승 49패 2무, 승률 0.695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고, 팀 타율 0.278, 팀 평균자책점 3.64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 포수 박경완은 40홈런과 타율 0.282를 기록하며 KBO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또한, 톰 퀸란은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4승 3패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외국인 선수 최초로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퀸란은 한화와의 개막 3연전에서 총 7개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 3. 2. 2001년
2001년 현대 유니콘스는 구단의 최대 주주였던 현대전자(現 하이닉스반도체)의 부도로 인해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다. 2001년 현대그룹의 경영 부진으로 그룹 계열사에서 빠져나가게 된 현대전자가 스포츠 구단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면서, 현대 유니콘스는 명목상 대주주인 하이닉스로부터 지원이 끊기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구단 매각설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범 현대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구단을 운영하게 된다.[5]이 시기에 현대 유니콘스는 에이스 정민태가 2000년 시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고, 불펜 투수 조웅천은 SK 와이번스로 현금 트레이드, 심재학은 선수협 파동으로 두산 베어스의 심정수와 1:1 트레이드, 정명원은 2000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는 등 주축 선수들의 이탈을 겪었다.
2001년 시즌에는 선발 임선동과 불펜 투수 신철인, 권준헌 등의 활약과 타선에서는 유격수 박진만과 포수 박경완이 활약했다. 박진만은 유격수로 3할 타율에 22홈런을 기록했고, 박경완은 포수 최초로 20홈런-20도루를 기록했다.
시즌 동안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와 치열한 선두권 다툼을 벌인 끝에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 1승 3패로 패하며 최종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음은 2001년 현대 유니콘스 선수 명단이다.
2. 3. 3. 2002년
2002년 정규 시즌은 임선동과 마무리에서 선발로 복귀한 위재영 등 주전 선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선수층이 약화되었으나, 신인으로 입단한 조용준은 마무리 투수로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타선에서는 심정수와 이숭용의 활약과 조직력, 짜임새를 갖춘 선수단은 정규 시즌 3위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심정수는 46개의 홈런을 기록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과 SK 와이번스의 용병 타자 페르난데스와 홈런 경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한 현대 유니콘스는 준플레이오프(포스트 시즌)에서 정규 시즌 4위였던 LG 트윈스를 상대로 2전 전패함으로써 4위에 그치게 되었다.[4]2. 3. 4. 2003년
정민태가 복귀하고 심정수가 맹활약을 펼쳤으며, 故 정몽헌 회장의 자살 등 굴곡이 많았던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유니콘스는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심정수는 타율 0.335, 53홈런(역대 2위), 142타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시즌을 보냈고, 당시 역대 최고 OPS 1.197을 기록했다(현재도 역대 2위).[5]
| 선수 | 재적 연도 |
|---|---|
| 정민태 | 1992-2000, 2003-2007 |
| 이종욱 | 2003-2005 |
| 김동수 | 2003-2007 |
| 이택근 | 2003-2007 |
| 권도영 | 2003-2007 |
| 정성훈 | 2003-2007 |
| 지석훈 | 2003-2007 |
2. 3. 5. 2004년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승리한 현대 유니콘스는 2004년에도 강력한 전력을 유지했다. 에이스 정민태는 2003년에 17승 2패, 21연승을 기록하며 맹활약했고, 셰인 바워스는 방어율 3.01로 리그 1위에 올랐다. 타선에서는 심정수가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과 홈런 경쟁을 벌이며 53홈런 142타점을 기록했고, KIA 타이거즈에서 이적해 온 정성훈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그러나 2004년 시즌 중,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규모 병역 비리 사건이 터졌다. 많은 선수들이 연루되어 현대 유니콘스 역시 큰 타격을 입었다.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전력 약화가 불가피했지만, 현대는 특유의 끈끈한 팀워크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현대 유니콘스는 정규 시즌을 80승 51패로 마감하며 1위를 차지,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현대는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하며 4승 2무 3패로 승리,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자 통산 4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2. 4. 2005년~2007년 몰락기
2000년대 초반까지 리그 정상급 성적을 유지하던 현대 유니콘스는 2005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겪게 된다. 2004년 시즌 후, 주축 선수였던 박진만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고, 심정수는 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나면서 전력에 큰 손실을 입었다.모기업 현대전자의 법정 관리와 적은 관중 수는 재정난을 심화시켰다.[5] 이로 인해 유니콘스는 다른 현대 계열사의 지원에 의존해야 했으며,[5] 2006년 시즌 후에는 농협에 매각될 뻔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5] 결국 현대 유니콘스는 2008년 1월 해체되었다. 이후 시애틀에 본사를 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선수와 직원을 인수하여 히어로즈 야구단을 창단하고,[6]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했다.
2. 4. 1. 2005년
2004년 시즌 후, 박진만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고, 심정수는 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나면서 현대 유니콘스는 전력에 큰 손실을 입었다. 이로 인해 2005년 시즌에는 부진을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2. 4. 2. 2006년
2006년 시즌, 현대 유니콘스는 모기업 현대전자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서 재정난을 겪었고, 관중 수도 적어 어려움이 컸다.[5] 이 시기 유니콘스는 다른 현대 계열사의 지원에 의존해야 했다.[5] 시즌 후에는 농업협동조합에 매각될 뻔했으나 무산되었다.[5]2. 4. 3. 2007년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유니콘스는 대주주인 현대전자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고, 팀 관중 수가 적어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5] 이 기간 동안 유니콘스는 다른 현대 계열사의 재정 지원에 의존해야 했다.[5] 2006년 시즌이 끝날 무렵, 농협에 매각될 뻔했지만 무산되었다.[5]2. 5. 매각 과정과 해체
1995년 KBO 시즌 이후 현대전자(Hynix Semiconductor)의 모기업 현대 그룹은 재정난을 겪던 팀을 인수하여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을 변경했다.[5] 그러나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모기업 현대전자가 법정 관리에 들어가고 관중 수도 적어 유니콘스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했다.[5] 이 기간 동안 유니콘스는 다른 현대 계열사의 재정 지원에 의존해야 했다.[5] 2006년 시즌 후에는 농업협동조합에 매각될 뻔했으나 무산되었다.[5]결국 2008년 1월, 현대 유니콘스는 해체되었다. 이후 시애틀에 본사를 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와 직원을 인수하여 히어로즈 야구단을 창단하고,[6]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했다.
3. 주요 기록
포스트시즌 2위
포스트시즌 우승
리그 3위
리그 1위
포스트시즌 우승
포스트시즌 3위
포스트시즌 4위
포스트시즌 우승
포스트시즌 우승
포스트시즌 3위
